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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근로자의 날.
우리는 이날을 ‘노동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싸움의 기록'입니다. 한국 현대사 속 노동운동은 단순히 임금을 올리거나 복지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자유와 인간 존엄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치열했던 현장을 몇 가지 주요 사건을 통해 함께 되짚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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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

1970년 11월 13일, 평범한 재단사였던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은 서울 평화시장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평화시장에는 하루 14시간 이상 일을 하고도 쥐꼬리만 한 임금을 받는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넘쳐났습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 있으나 현실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외친 한마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영원히 남은 외침이 되었고, 이후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 1970~80년대: 노동3권 쟁취 투쟁과 민주화운동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는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이 극도로 억압되었습니다. 정부는 어용 노조를 만들었고, 자주적 노동운동은 불법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인천 기계공업단지 등지에서는 작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이 맞물려 커다란 물결을 이루게 됩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사건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입니다.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임금 인상과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1987년에는 전국적으로 민주노조 건설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3.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를 향한 물꼬가 트이자마자 터진 것은 바로 전국적 규모의 노동자 항쟁이었습니다.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에는 약 3천여 건이 넘는 노동 쟁의가 발생했고, 약 122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과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현대중공업 파업,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설립 투쟁 등이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한국 사회에 '자주적 민주노조'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4.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창립

1995년 11월 11일, 전국의 여러 자주적 노조들이 힘을 모아 민주노총을 창립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정부 주도 노총(한국노총)과 구분되는 독립적 노동자 조직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은 이후 노동자의 권익 향상, 사회 개혁 운동, 반신자유주의 투쟁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단순히 임금 협상을 넘어 비정규직 문제, 산재 사고, 사회안전망 구축 등 광범위한 사회 의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5. 19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1996년 겨울, 정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노동법을 개악하려 했습니다. 비정규직 확대, 해고 요건 완화 등이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민주노총은 사상 초유의 총파업을 선언했고, 한국 사회 전체가 마비될 정도의 거대한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지하철이 멈추고, 병원들이 휴업하고, 학교 수업이 중단되었습니다.

비록 개악은 일부 강행되었지만, 이 사건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노동권 논의가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제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6.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문제와 새로운 투쟁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급격히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겪었습니다. 대량 해고, 비정규직 증가, 노동 양극화가 본격화되었죠.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3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그리고 최근까지 이어진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 배달 라이더 노동권 운동 등이 있습니다.

이제 한국 노동운동은 정규직 노동자 중심에서 벗어나,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근로자의 날은 '수고한 사람들을 칭찬하는 날'이 아닙니다. 피 흘리고, 목숨을 걸어 쟁취한 권리들을 기억하고, 여전히 싸워야 할 과제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어떤 거창한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기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용히 싸우고 있을 것입니다.

 

"노동 없는 자유는 없다."
그 한마디를, 오늘 이 순간에도 새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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